이천일기
(이천문화원과 고카시국제교류협회 시민교류여행기)
"김희정 시민기록자"
저의 일기를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들어있죠. 그래도 이번 일기는 공유하려고 합니다. 내용은 지난 8월 29일(금)~8월 31일(일)까지 이천시 부발읍에서 시작해 중리동까지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의 기록입니다. 동행인도 있습니다. 동행인에 대해서는 이천일기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일기 제목은 ‘이천일기’입니다. 이 제목은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 쓴 ‘열하일기(熱河日記)’에서 착안했습니다. 열하일기는, 박지원이 1780년(정조4) 5월 25일부터 같은 해 10월 27일까지 압록강과 연경(북경)을 거쳐 열하(청더. 청나라 황실 피서산장, 별궁 등이 있음)까지 여행하면서 쓴 일기체 형식의 기행문입니다. 제가 이번 여행에 동행하게 된 데는 이천문화원의 배려가 있었습니다. 이천시민 입장에서 이천과 일본의 시민 교류 과정을 기록하고 싶다는 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주신 겁니다. 참고로, 저는 2018년에 이천을 방문한 고카시 시민교류단과 함께 이천을 여행했고 2019년에는 이천문화원 시민교류단 일원으로 2박 3일간 일본을 여행했습니다. 그러하니 이 일기는 그것의 연장선이기도 합니다.
일본 고카시 시민교류단 환영만찬회
8월 29일 금요일. 무덥고 매우 습했음.
무덥고 습한 날의 연속이다. 아~ 이 더위는 언제 떠나려나, 그래도 오늘은 8월의 끝자락. 더위도 언젠가는 떠날 것이다. 택시를 타고 환영회장으로 향했다. 택시 차창 너머 들녘은 초록색과 연두색 겨자색이다. 어떤 벼는 익었고 어떤 벼는 익어가고 있다. 어느 작가가 썼던가. 여름 속에 가을이 있다고. 8월의 들판에 여름과 가을이 있다.
오후 5시 40분. 택시는 부발읍에 위치한 가모스하우스웨딩에서 멈췄다. 환영회장에 들어가 보니 고카시국제교류협회 시민교류단(이하 교류단)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원래 일정대로였다면 교류단은 17시쯤 이천시 중리동에 위치한 스카이썬 호텔에 도착, 18시 환영회장에 도착이었다. 나는 교류단과 함께 관광버스를 타고 환영회장에 도착이었고.


환영회장 테이블에는 우리나라와 일본 국기가 꽂아있다. 태극기를 볼 때면 뭔지 모를 애국심이 솟는다. 음료수병에는 일본어로 표기된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교류단을 위한 섬세한 배려이다. 6시 5분. 교류단이 도착했다고 한다. 기쁘고 감사하다. 인천공항에서 이천으로 오는 도중 도로에서 사정이 생겨서 환영회장으로 바로 왔다고 했다. 문득 일본 시가현 고카시에서 대한민국 경기도 이천시까지 무사히 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열하일기에 따르면 6월인데 장마로 인해 압록강 수위가 올라간 바람에 조선 사절단은 며칠째 강을 건너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하니 이렇게 제 시간에 이천에 도착한 것이 기적 아니겠는가.
교류단은 총 20명, 니시무라 후미카즈(西村文一) 방문단장, 하시모토 요시노부(橋本善信) 고카시국제교류협회 부회장을 비롯한 회원 14명, 일본 고카시 코사지 스이료 북 공연단 6명이다. 이들이 환영회장에 들어오자 조성원 이천문화원 원장, 박명서 이천시의회 의장, 이응광 이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심덕구 이천거북놀이보존회장을 비롯한 이천시민 60여 명이 악수와 박수로 환영했다. 교류단은 서로 다른 테이블에 앉았다. 이천문화원이 각 테이블마다 한·일 참석자가 골고루 섞여서 앉도록 자리를 배치했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배치이다.
드디어 환영식이 시작됐다. 사회는 이선민 이천문화원 팀장과 나현지 이천시청 주무관이 봤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나 주무관은 일본어 통역을 맡았다. 그녀의 자신감 넘치는 통역과 밝은 에너지는 환영회장의 분위기를 압도했다.
환영회 오프닝 공연은 해금과 신디사이저 콜라보 연주였다. 연주곡은 ‘진도아리랑’과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 ost ‘썸머(summer)’, 일본의 팝 음악 가수 마츠다 세이코가 부른 ‘푸른산호초’. 아름다운 음악 공연은 관람자를 행복하게 한다. 행사의 품격을 더한다.
환영회에서 조성원 원장과 니시무라 후미카즈 단장 등은 환영사와 축사를 주고받았다, 요약하면 이러하다.
“이천시와 고카시는 각각 품질 좋은 쌀과 도자기를 생산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두 도시의 교류는 1992년 이천문화원과 당시 시가라키정관광협회가 도예문화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이후 1996년부터 공식 국제우호 친선교류로 이어졌으며 30여 년 동안 청소년(중학생), 청년도예, 지역축제, 농업, 지역문화와 예술 분야 등 교류 영역을 확대하며 깊은 우정을 쌓았다. 이 교류가 다음 세대에게도 큰 유산이 될 것이다.”
환영회에서 이천문화원과 고카시국제교류협회 측 간의 특산품과 기념품을 교환했다. 기념품은 두 도시의 공통 특산품인 ‘도자기’와 ‘공예품’. 이날 공식 기념품 외 윤여홍 서울경기인삼농업협동조합 조합장은 홍삼제품을, 김민경 이천 한마음유치원 원장은 우리나라 전통 자개 문양이 들어간 굿즈를 교류단에게 전달했다. 정성이 담긴 선물을 보니 마음이 따듯해졌다.
곧이어 만찬 시간. 저녁 식사는 뷔페였다. 뷔페 음식은 정갈하고 맛있었다. 종류도 다양했다. 더 먹을 음식을 접시에 담으며 어떤 아이디어가 빠르게 오갔다. 이천시에서 하는 공식 만찬 행사에는 이천에서 만든 도자기 식기와 이천에서 생산한 먹거리 등을 제공하는 조례를 만들면 어떨까, 앗, 이거 정책이잖아. 일기가 정책 제안하는 곳이 된 것 같다. 오늘은 여기서 그만.
8월 30일 토요일. 새벽엔 비가 내렸으나 아침엔 멈춤,
오늘 일정은 이천문화원 원사와 시민기록관 투어, 서희역사관 투어, 이천아트홀 ‘막한데이’전시, 경기도자미술관 ‘현대도예 오디세이’ 전시, ‘풍류’ 공연 관람이다.

오전 9시 30분, 이천문화원에서 원사 투어가 시작됐다. 먼저 이 팀장이 이천문화원을 소개했다. 이 시간에 인상 깊었던 게 있었다. 교류단의 강의를 경청하는 자세였다. 손바닥만 한 수첩에 메모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동준 사무국장이 원사 복도에 부착된 이천 옛 지도에 관해 설명했을 때, 그리고 이천문화원 시민기록관에 비치된 이천과 관련된 다채로운 책과 역사 기록물에 관한 해설했을 때, 교류단은 역시 큰 관심을 보였다. 원사와 시민기록관 투어가 끝난 후 문화원 강의실에서 다과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간식으로 차와 커피, 과자, 장호원 황도가 나왔다.
이때 우에하라 히로쓰구(上原弘嗣) 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46세 미혼인 그는 히로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고카시국제교류협회 회원이며 그래픽디자이너인 그는 솔직했고 명랑했다.

사실 나는 일본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할 줄도 모르고 쓰거나 읽지 못한다.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은 청나라를 여행할 때 통역 외 필담(筆談. 글로 써서 서로 묻고 대답함)으로 의사소통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내 일본어 실력은 2019년에 일본어 기초수업을 잠깐 들은 게 전부다. 그때부터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면, 자유롭게 대화를 했을 텐데. 후회가 밀려온다. 신생아가 “엄마”라는 말을 하려면 ‘엄마’라는 단어를 약 5,000번 듣고 따라 해야 한다. 일본어 신생아 수준인 나도 그렇게 해보려고 한다. 어떤 일이든 시작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이번 여행지는 부발읍 효양산자락에 있는 서희테마공원이다. 공원에 도착하자 스이료 북공연 단원들은 공원의 이곳저곳을 활기차게 다녔다. 20~40대 여성 5명과 20대 남성 1명으로 구성된 북공연단원은 밝고 발랄했다. 호기심과 모험심이 가득해 보였다. 사소한 일에도 스미마셍(すみません)이라며 사과하는 말을 자주 사용한, 기존에 만난 일본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

서희역사관에서 서희 선생의 일대기를 들은 교류단은 이구동성으로 “이천에서 이렇게 훌륭한 인물이 나왔다는 것에 놀랐다. 공원과 역사관을 지어서 역사적 인물을 기리고 알리는 일 또한 배울 점이다.”라며 격찬했다. 993년, 고려와 거란의 1차 전쟁 때 무력이 아닌 협상으로 전쟁을 멈추게 하고 영토를 확장시킨 서희 선생의 협상능력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다.
서희역사관에서 오오히라 마사미치(大平正道 70대) 선생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마사미치 씨는 2001년 이천에 처음 왔고 당시 세계도자기엑스포를 구경한 것과 미란다호텔에 사우나와 온천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25년이 지난 이번에 이천에 와 보니 많은 것이 변했다고 말했다.
서희추모관 앞 마당에서 서희 선생 영정을 향해 엎드리며 큰절을 하는 교류단원도 있었다. 그 이유를 묻자 한국 드라마 역사극 중에서 신하가 왕에게 마마 라고 하며 큰절을 올리는 장면이 떠올라 흉내냈다고 했다. 나는 위대한 인물에 대한 추모를 드린 게 아닌가 생각했다. 서희역사관에서 나는 일본어를 꼭 배워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서희 선생에 대해서 더 알려주고 싶고 Papago(파파고) 번역기가 있으나 대화의 진도가 나가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서희역사관을 둘러본 후 관광버스를 타고 관고동으로 향했다. 식당에 도착하니 미리 준비한 음식이 한 상 차려져 있었다. 이천쌀로 갓 지은 밥, 제육볶음과 고등어구이, 간장게장까지.
점심을 먹은 후 설봉공원 내에 위치한 경기도자미술관에 들렀다. 이곳에서 「현대도예 오디세이」 전시와 「108번뇌」 전시를 관람했다. 전시를 관람하며 후미카즈 단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고 교장선생님으로 은퇴했다. 고카시교육청에서 교육장도 역임했다. 후미카즈 단장한테 “이천은 어떤 도시인 것 같은가요?”라고 여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천은 지역문화와 전통 자원이 풍부한 도시인 것 같습니다. 역사와 전통문화 예술을 소중히 여기고 잘 보존하고 있고 잘 이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배울 게 정말 많은 도시입니다.”
전시를 관람한 후 잠깐 짬이 났다. 후미카즈 씨와 김주희 씨 등 몇 사람과 함께 설봉공원 내에 있는 다리원(茶利苑)으로 향했다. 이곳은 내가 설봉공원에서 좋아하는 공간이다. 우리 일행은 전통 한옥인 다리원에 들러 대금 연주를 감상할 수 있었다.

이천아트홀에서 열린 2025 기업열전展 「막한데이」도 관람했다. ‘막한’은 막걸리와 한과의 줄임말. ‘이천쌀’을 원료로 만든 ‘이천미 누룩막걸리’·‘범표주조’·‘단드레한과’전시였다. 전시는 야외에서 시음 시식으로 연결됐다, 전시장 밖 야외에 있는 평상에 앉았다. 얼마 후 막걸리와 한과, 김치부침개가 나왔다. 역사드라마 한 장면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8월의 무더위가 흠이라면 흠이었다.
이천아트홀 로비 쇼파에 앉아서 야스이 겐지(安井研二 60대)씨, 후미카즈 단장, 히로 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겐지 씨는 일본에서 반도체 엔지니어로 일한다. 우리나라 수원에 있는 삼성과 이천 SK하이닉스에서 각각 2주 정도 일한 적이 있다. 겐지 씨한테 “이번에 이천에 와서 인상 깊었거나 좋았던 곳은 어디인가요?”라고 물었다. 겐지 씨는 이렇게 말했다.
“‘영월암’입니다. 한국 절은 일본 절과 매우 다르더군요. 단청 문양과 색이 굉장히 화려해서 아름답고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산에 오르는 것을 즐깁니다. 그래서 영월암은 이번 일정에 없었으나 새벽 5시에 일어나 설봉산에 오르고 영월암에 갔습니다. 그리고 이천 SK하이닉스에 서 파견근무를 할 땐 이천에 대해 알 기회가 없었습니다. 일만 했기 때문이죠. 이번에 와서 이천이 도자기와 쌀이 유명한 도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천은 서울보다 편안하고 여유로운 도시입니다. 자연환경도 좋습니다.”
이천에서 어떤 음식이 맛있었냐고 물었다. 겐지 씨는 감자탕. 히로 씨는 간장게장이 맛있었고 국밥, 특히 서울에서 처음 먹은 용인순대국밥이 생각난다고 했다.

교류단원 가운데 편하게 대화를 한 사람은 히로 씨였다. 히로 씨가 한국말을 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배우게 된 동기를 물었더니 한국 사람인 전 여친(여자친구)’과 사귀면서 한국어를 배웠고 헤어진 지는 꽤 오래됐다고 했다. 옛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한국어 공부에 공백기도 있었으나 3년 전 한국어능력시험 5급에 합격했다고 한다. 그가 한국어를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상상이 됐다. 히로 씨의 소망대로 그의 그래픽디자인이 한국과 일본을 이어주길 바라며 그가 하는 일이 잘 되기를 기원한다.
저녁 식사로 칼만두국과 보리밥을 먹었다. 식당에서 교류단에게 이천문화원에서 발행한 잡지 ‘설봉문화’를 드렸다. 교류단은 이 잡지로 한국어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교류단 중에서 한국어동아리 회원이 여러 명이었다. 그들은 한국어가 어렵지만 서로 격려하며 공부한다고 했다.

해가 질 무렵부터 이천무형문화유산전수교육관에서 ‘2025 전통문화유산 한마당 풍류’를 관람했다. 이천거북놀이보존회의 공연 그리고 국내 여러 전통연희단체의 공연이었다. 일본 코사지 수이료 북공연단의 힘찬 연주에 스트레스가 휙휙 날아갔다. 이 공연단은 고카시 전통 북 창작공연팀으로 올해 이천에서 초청했다. 2024년에는 일본에서 이천거북놀이보존회를 초청했고.

작별, 또 만나요.
8월 31일 일요일. 무덥고 습함
꿈같은 시간이 지났다. 오전 9시 30분 이제 작별할 시간이다. 이천문화원 원사 앞에서 교류단이 떠나기 직전, 두 나라 사람들의 훈훈한 정(情)문화를 봤다. 이천시민 몇몇 분이 교류단에게 줄 선물을 준비해 온 것이다. 가마에서 꺼낸 지 얼마 안 된 도자기, 손수 만든 인테리어 소품, 녹매청고추장까지. 교류단이 준 선물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니 고카시와 이천시민은 정(情)과 문화를 주거니 받거니 한 것이다. 가슴 찡한 장면도 있었다. 두 나라 시민이 서로 안고 우는 장면이었다. 하마터면 나도 울뻔했다.
2026년에는 이천시민이 고카시에 간다. 나는 집에 돌아와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고맙습니다(아리가또 고자이마쓰) 또 만나요.(また会いましょう)”

참, 김주희 씨한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주희 씨의 통역 덕분에 교류단과 소통을 원활하게 했다. 주희 씨는 20대 중반에 일본으로 공부하러 갔고 그때 일본인 친구한테 받은 호의를 잊지 않았다. 20년이 지난 이번에 교류단 중 야마자키 도모미(山崎智美 40대)을 집에 모시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주희 씨의 일본어 실력은 상당했다. 주희 씨의 행보를 응원한다. 끝.

이천일기
(이천문화원과 고카시국제교류협회 시민교류여행기)
"김희정 시민기록자"
저의 일기를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들어있죠. 그래도 이번 일기는 공유하려고 합니다. 내용은 지난 8월 29일(금)~8월 31일(일)까지 이천시 부발읍에서 시작해 중리동까지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의 기록입니다. 동행인도 있습니다. 동행인에 대해서는 이천일기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일기 제목은 ‘이천일기’입니다. 이 제목은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 쓴 ‘열하일기(熱河日記)’에서 착안했습니다. 열하일기는, 박지원이 1780년(정조4) 5월 25일부터 같은 해 10월 27일까지 압록강과 연경(북경)을 거쳐 열하(청더. 청나라 황실 피서산장, 별궁 등이 있음)까지 여행하면서 쓴 일기체 형식의 기행문입니다. 제가 이번 여행에 동행하게 된 데는 이천문화원의 배려가 있었습니다. 이천시민 입장에서 이천과 일본의 시민 교류 과정을 기록하고 싶다는 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주신 겁니다. 참고로, 저는 2018년에 이천을 방문한 고카시 시민교류단과 함께 이천을 여행했고 2019년에는 이천문화원 시민교류단 일원으로 2박 3일간 일본을 여행했습니다. 그러하니 이 일기는 그것의 연장선이기도 합니다.
일본 고카시 시민교류단 환영만찬회
8월 29일 금요일. 무덥고 매우 습했음.
무덥고 습한 날의 연속이다. 아~ 이 더위는 언제 떠나려나, 그래도 오늘은 8월의 끝자락. 더위도 언젠가는 떠날 것이다. 택시를 타고 환영회장으로 향했다. 택시 차창 너머 들녘은 초록색과 연두색 겨자색이다. 어떤 벼는 익었고 어떤 벼는 익어가고 있다. 어느 작가가 썼던가. 여름 속에 가을이 있다고. 8월의 들판에 여름과 가을이 있다.
오후 5시 40분. 택시는 부발읍에 위치한 가모스하우스웨딩에서 멈췄다. 환영회장에 들어가 보니 고카시국제교류협회 시민교류단(이하 교류단)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원래 일정대로였다면 교류단은 17시쯤 이천시 중리동에 위치한 스카이썬 호텔에 도착, 18시 환영회장에 도착이었다. 나는 교류단과 함께 관광버스를 타고 환영회장에 도착이었고.
환영회장 테이블에는 우리나라와 일본 국기가 꽂아있다. 태극기를 볼 때면 뭔지 모를 애국심이 솟는다. 음료수병에는 일본어로 표기된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교류단을 위한 섬세한 배려이다. 6시 5분. 교류단이 도착했다고 한다. 기쁘고 감사하다. 인천공항에서 이천으로 오는 도중 도로에서 사정이 생겨서 환영회장으로 바로 왔다고 했다. 문득 일본 시가현 고카시에서 대한민국 경기도 이천시까지 무사히 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열하일기에 따르면 6월인데 장마로 인해 압록강 수위가 올라간 바람에 조선 사절단은 며칠째 강을 건너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하니 이렇게 제 시간에 이천에 도착한 것이 기적 아니겠는가.
교류단은 총 20명, 니시무라 후미카즈(西村文一) 방문단장, 하시모토 요시노부(橋本善信) 고카시국제교류협회 부회장을 비롯한 회원 14명, 일본 고카시 코사지 스이료 북 공연단 6명이다. 이들이 환영회장에 들어오자 조성원 이천문화원 원장, 박명서 이천시의회 의장, 이응광 이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심덕구 이천거북놀이보존회장을 비롯한 이천시민 60여 명이 악수와 박수로 환영했다. 교류단은 서로 다른 테이블에 앉았다. 이천문화원이 각 테이블마다 한·일 참석자가 골고루 섞여서 앉도록 자리를 배치했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배치이다.
드디어 환영식이 시작됐다. 사회는 이선민 이천문화원 팀장과 나현지 이천시청 주무관이 봤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나 주무관은 일본어 통역을 맡았다. 그녀의 자신감 넘치는 통역과 밝은 에너지는 환영회장의 분위기를 압도했다.
환영회 오프닝 공연은 해금과 신디사이저 콜라보 연주였다. 연주곡은 ‘진도아리랑’과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 ost ‘썸머(summer)’, 일본의 팝 음악 가수 마츠다 세이코가 부른 ‘푸른산호초’. 아름다운 음악 공연은 관람자를 행복하게 한다. 행사의 품격을 더한다.
환영회에서 조성원 원장과 니시무라 후미카즈 단장 등은 환영사와 축사를 주고받았다, 요약하면 이러하다.
“이천시와 고카시는 각각 품질 좋은 쌀과 도자기를 생산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두 도시의 교류는 1992년 이천문화원과 당시 시가라키정관광협회가 도예문화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이후 1996년부터 공식 국제우호 친선교류로 이어졌으며 30여 년 동안 청소년(중학생), 청년도예, 지역축제, 농업, 지역문화와 예술 분야 등 교류 영역을 확대하며 깊은 우정을 쌓았다. 이 교류가 다음 세대에게도 큰 유산이 될 것이다.”
환영회에서 이천문화원과 고카시국제교류협회 측 간의 특산품과 기념품을 교환했다. 기념품은 두 도시의 공통 특산품인 ‘도자기’와 ‘공예품’. 이날 공식 기념품 외 윤여홍 서울경기인삼농업협동조합 조합장은 홍삼제품을, 김민경 이천 한마음유치원 원장은 우리나라 전통 자개 문양이 들어간 굿즈를 교류단에게 전달했다. 정성이 담긴 선물을 보니 마음이 따듯해졌다.
곧이어 만찬 시간. 저녁 식사는 뷔페였다. 뷔페 음식은 정갈하고 맛있었다. 종류도 다양했다. 더 먹을 음식을 접시에 담으며 어떤 아이디어가 빠르게 오갔다. 이천시에서 하는 공식 만찬 행사에는 이천에서 만든 도자기 식기와 이천에서 생산한 먹거리 등을 제공하는 조례를 만들면 어떨까, 앗, 이거 정책이잖아. 일기가 정책 제안하는 곳이 된 것 같다. 오늘은 여기서 그만.
8월 30일 토요일. 새벽엔 비가 내렸으나 아침엔 멈춤,
오늘 일정은 이천문화원 원사와 시민기록관 투어, 서희역사관 투어, 이천아트홀 ‘막한데이’전시, 경기도자미술관 ‘현대도예 오디세이’ 전시, ‘풍류’ 공연 관람이다.
오전 9시 30분, 이천문화원에서 원사 투어가 시작됐다. 먼저 이 팀장이 이천문화원을 소개했다. 이 시간에 인상 깊었던 게 있었다. 교류단의 강의를 경청하는 자세였다. 손바닥만 한 수첩에 메모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동준 사무국장이 원사 복도에 부착된 이천 옛 지도에 관해 설명했을 때, 그리고 이천문화원 시민기록관에 비치된 이천과 관련된 다채로운 책과 역사 기록물에 관한 해설했을 때, 교류단은 역시 큰 관심을 보였다. 원사와 시민기록관 투어가 끝난 후 문화원 강의실에서 다과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간식으로 차와 커피, 과자, 장호원 황도가 나왔다.
이때 우에하라 히로쓰구(上原弘嗣) 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46세 미혼인 그는 히로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고카시국제교류협회 회원이며 그래픽디자이너인 그는 솔직했고 명랑했다.
사실 나는 일본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할 줄도 모르고 쓰거나 읽지 못한다.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은 청나라를 여행할 때 통역 외 필담(筆談. 글로 써서 서로 묻고 대답함)으로 의사소통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내 일본어 실력은 2019년에 일본어 기초수업을 잠깐 들은 게 전부다. 그때부터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면, 자유롭게 대화를 했을 텐데. 후회가 밀려온다. 신생아가 “엄마”라는 말을 하려면 ‘엄마’라는 단어를 약 5,000번 듣고 따라 해야 한다. 일본어 신생아 수준인 나도 그렇게 해보려고 한다. 어떤 일이든 시작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이번 여행지는 부발읍 효양산자락에 있는 서희테마공원이다. 공원에 도착하자 스이료 북공연 단원들은 공원의 이곳저곳을 활기차게 다녔다. 20~40대 여성 5명과 20대 남성 1명으로 구성된 북공연단원은 밝고 발랄했다. 호기심과 모험심이 가득해 보였다. 사소한 일에도 스미마셍(すみません)이라며 사과하는 말을 자주 사용한, 기존에 만난 일본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
서희역사관에서 서희 선생의 일대기를 들은 교류단은 이구동성으로 “이천에서 이렇게 훌륭한 인물이 나왔다는 것에 놀랐다. 공원과 역사관을 지어서 역사적 인물을 기리고 알리는 일 또한 배울 점이다.”라며 격찬했다. 993년, 고려와 거란의 1차 전쟁 때 무력이 아닌 협상으로 전쟁을 멈추게 하고 영토를 확장시킨 서희 선생의 협상능력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다.
서희역사관에서 오오히라 마사미치(大平正道 70대) 선생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마사미치 씨는 2001년 이천에 처음 왔고 당시 세계도자기엑스포를 구경한 것과 미란다호텔에 사우나와 온천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25년이 지난 이번에 이천에 와 보니 많은 것이 변했다고 말했다.
서희추모관 앞 마당에서 서희 선생 영정을 향해 엎드리며 큰절을 하는 교류단원도 있었다. 그 이유를 묻자 한국 드라마 역사극 중에서 신하가 왕에게 마마 라고 하며 큰절을 올리는 장면이 떠올라 흉내냈다고 했다. 나는 위대한 인물에 대한 추모를 드린 게 아닌가 생각했다. 서희역사관에서 나는 일본어를 꼭 배워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서희 선생에 대해서 더 알려주고 싶고 Papago(파파고) 번역기가 있으나 대화의 진도가 나가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서희역사관을 둘러본 후 관광버스를 타고 관고동으로 향했다. 식당에 도착하니 미리 준비한 음식이 한 상 차려져 있었다. 이천쌀로 갓 지은 밥, 제육볶음과 고등어구이, 간장게장까지.
점심을 먹은 후 설봉공원 내에 위치한 경기도자미술관에 들렀다. 이곳에서 「현대도예 오디세이」 전시와 「108번뇌」 전시를 관람했다. 전시를 관람하며 후미카즈 단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고 교장선생님으로 은퇴했다. 고카시교육청에서 교육장도 역임했다. 후미카즈 단장한테 “이천은 어떤 도시인 것 같은가요?”라고 여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천은 지역문화와 전통 자원이 풍부한 도시인 것 같습니다. 역사와 전통문화 예술을 소중히 여기고 잘 보존하고 있고 잘 이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배울 게 정말 많은 도시입니다.”
전시를 관람한 후 잠깐 짬이 났다. 후미카즈 씨와 김주희 씨 등 몇 사람과 함께 설봉공원 내에 있는 다리원(茶利苑)으로 향했다. 이곳은 내가 설봉공원에서 좋아하는 공간이다. 우리 일행은 전통 한옥인 다리원에 들러 대금 연주를 감상할 수 있었다.
이천아트홀에서 열린 2025 기업열전展 「막한데이」도 관람했다. ‘막한’은 막걸리와 한과의 줄임말. ‘이천쌀’을 원료로 만든 ‘이천미 누룩막걸리’·‘범표주조’·‘단드레한과’전시였다. 전시는 야외에서 시음 시식으로 연결됐다, 전시장 밖 야외에 있는 평상에 앉았다. 얼마 후 막걸리와 한과, 김치부침개가 나왔다. 역사드라마 한 장면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8월의 무더위가 흠이라면 흠이었다.
이천아트홀 로비 쇼파에 앉아서 야스이 겐지(安井研二 60대)씨, 후미카즈 단장, 히로 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겐지 씨는 일본에서 반도체 엔지니어로 일한다. 우리나라 수원에 있는 삼성과 이천 SK하이닉스에서 각각 2주 정도 일한 적이 있다. 겐지 씨한테 “이번에 이천에 와서 인상 깊었거나 좋았던 곳은 어디인가요?”라고 물었다. 겐지 씨는 이렇게 말했다.
“‘영월암’입니다. 한국 절은 일본 절과 매우 다르더군요. 단청 문양과 색이 굉장히 화려해서 아름답고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산에 오르는 것을 즐깁니다. 그래서 영월암은 이번 일정에 없었으나 새벽 5시에 일어나 설봉산에 오르고 영월암에 갔습니다. 그리고 이천 SK하이닉스에 서 파견근무를 할 땐 이천에 대해 알 기회가 없었습니다. 일만 했기 때문이죠. 이번에 와서 이천이 도자기와 쌀이 유명한 도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천은 서울보다 편안하고 여유로운 도시입니다. 자연환경도 좋습니다.”
이천에서 어떤 음식이 맛있었냐고 물었다. 겐지 씨는 감자탕. 히로 씨는 간장게장이 맛있었고 국밥, 특히 서울에서 처음 먹은 용인순대국밥이 생각난다고 했다.
교류단원 가운데 편하게 대화를 한 사람은 히로 씨였다. 히로 씨가 한국말을 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배우게 된 동기를 물었더니 한국 사람인 전 여친(여자친구)’과 사귀면서 한국어를 배웠고 헤어진 지는 꽤 오래됐다고 했다. 옛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한국어 공부에 공백기도 있었으나 3년 전 한국어능력시험 5급에 합격했다고 한다. 그가 한국어를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상상이 됐다. 히로 씨의 소망대로 그의 그래픽디자인이 한국과 일본을 이어주길 바라며 그가 하는 일이 잘 되기를 기원한다.
저녁 식사로 칼만두국과 보리밥을 먹었다. 식당에서 교류단에게 이천문화원에서 발행한 잡지 ‘설봉문화’를 드렸다. 교류단은 이 잡지로 한국어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교류단 중에서 한국어동아리 회원이 여러 명이었다. 그들은 한국어가 어렵지만 서로 격려하며 공부한다고 했다.
해가 질 무렵부터 이천무형문화유산전수교육관에서 ‘2025 전통문화유산 한마당 풍류’를 관람했다. 이천거북놀이보존회의 공연 그리고 국내 여러 전통연희단체의 공연이었다. 일본 코사지 수이료 북공연단의 힘찬 연주에 스트레스가 휙휙 날아갔다. 이 공연단은 고카시 전통 북 창작공연팀으로 올해 이천에서 초청했다. 2024년에는 일본에서 이천거북놀이보존회를 초청했고.
작별, 또 만나요.
8월 31일 일요일. 무덥고 습함
꿈같은 시간이 지났다. 오전 9시 30분 이제 작별할 시간이다. 이천문화원 원사 앞에서 교류단이 떠나기 직전, 두 나라 사람들의 훈훈한 정(情)문화를 봤다. 이천시민 몇몇 분이 교류단에게 줄 선물을 준비해 온 것이다. 가마에서 꺼낸 지 얼마 안 된 도자기, 손수 만든 인테리어 소품, 녹매청고추장까지. 교류단이 준 선물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니 고카시와 이천시민은 정(情)과 문화를 주거니 받거니 한 것이다. 가슴 찡한 장면도 있었다. 두 나라 시민이 서로 안고 우는 장면이었다. 하마터면 나도 울뻔했다.
2026년에는 이천시민이 고카시에 간다. 나는 집에 돌아와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고맙습니다(아리가또 고자이마쓰) 또 만나요.(また会いましょう)”
참, 김주희 씨한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주희 씨의 통역 덕분에 교류단과 소통을 원활하게 했다. 주희 씨는 20대 중반에 일본으로 공부하러 갔고 그때 일본인 친구한테 받은 호의를 잊지 않았다. 20년이 지난 이번에 교류단 중 야마자키 도모미(山崎智美 40대)을 집에 모시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주희 씨의 일본어 실력은 상당했다. 주희 씨의 행보를 응원한다. 끝.